우리는 종종 “왜 이렇게 바쁘지?”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정말로 일이 많아서라기보다 늘 급한 상태에 머물러 있기 때문인 경우가 더 많습니다.
하루는 꽉 차 있는데,
정작 “이건 내가 선택한 시간이다”라고 말할 수 있는 순간은 거의 없습니다.
움직이긴 했는데, 앞으로 간 느낌이 남지 않는 이유는 하루의 방향이 내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왜 늘 ‘급한 상태’에 머무르는가
급함은 일정이 많아서 생기지 않습니다. 급함은 “지금 무엇이 중요한가”를 스스로 정하지 못할 때 만들어집니다.
기준이 없는 하루는 이렇게 흘러갑니다.
알림이 울리면 반응하고,
요청이 오면 끌려가고,
타인의 일정에 맞춰 방향이 바뀝니다.
하루는 바쁘게 채워지지만,
그 안에는 ‘내가 선택한 시간’이 거의 없습니다.
그래서 바쁜데도 성취감이 남지 않습니다. 움직였는데, 어디로 왔는지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기준이 없을 때 선택은 외부에 맡겨진다
기준이 없다는 것은
“무엇이 중요한가”를 아직 정해두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그 순간, 선택은 자동으로 외부로 넘어갑니다.
- 먼저 연락한 사람이 우선이 되고
- 더 급하게 말하는 쪽이 방향을 정하고
- 더 큰 목소리가 하루를 점유합니다
나는 결정을 하지 않았는데,
하루는 이미 누군가에 의해 결정되어 있습니다.
이 상태가 반복되면 삶은 점점 반응형이 됩니다. 주체가 아니라, 응답자가 됩니다.
타인의 일정이 내 하루를 결정하는 순간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휴대폰을 확인합니다.
메시지, 메일, 일정 알림.
아직 아무것도 시작하지 않았는데,
오늘은 이미 “해야 할 것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때 우리는 이렇게 말합니다.
“오늘도 정신없겠네.”
하지만 질문을 바꿔보면 다르게 보입니다.
“이 일정 중, 내가 선택한 건 무엇인가?”
기준이 없는 상태에서는
남의 급함이 곧 나의 급함이 됩니다.
타인의 속도가, 나의 하루 속도가 됩니다.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 없는 상태의 문제
문제는 느린 것이 아닙니다.
문제는 어디로 가고 있는지 모른 채 빠르게 움직이는 것입니다.
방향이 정해진 느림은 준비이고,
방향이 없는 빠름은 소모입니다.
기준은 속도를 줄이기 위한 장치가 아닙니다.
기준은 방향을 정하는 장치입니다.
방향이 생기면,
무엇을 받아들이고
무엇을 미루고
무엇을 거절해야 하는지도 함께 생깁니다.
그때 비로소 속도는
“남이 정한 급함”이 아니라
“내가 선택한 흐름”이 됩니다.
기준이 생긴 순간의 장면
어느 날, 한 사람은
밤 10시 이후에는 업무 메시지를 보지 않기로 했습니다.
대단한 결심은 아니었습니다.
다만 “하루의 끝만큼은, 내 것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 하나였습니다.
처음 며칠은 불안했습니다.
혹시 중요한 걸 놓치지는 않을까,
누군가 불편해하지는 않을까.
그런데 이상하게도,
세상은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대부분의 일은 다음 날에도 그대로 있었고, 정말 급한 일은 다른 방식으로 도착했습니다.
대신 달라진 것이 하나 있었습니다.
하루가 ‘끝났다’는 감각이 생겼다는 것.
그때 그는 처음으로 느꼈습니다.
“아, 오늘은 내가 정리한 하루였구나.”
기준은 이렇게 작게 시작됩니다.
그러나 그 작은 선 하나가,
하루의 주인이 누구인지 바꿔놓습니다.
기준이 생기면 하루의 밀도가 달라진다
그때부터 삶은
남의 일정에 반응하는 시간이 아니라,
내가 선택한 방향으로 쌓이는 시간이 됩니다.
하루가 끝났을 때
“오늘도 버텼다”가 아니라
“오늘은 내가 선택한 하루였다”라는 감각이 남습니다.
작은 기준 하나가 생겼을 뿐인데,
하루는 소모가 아니라 축적이 됩니다.
책 몇 쪽, 산책 20분,
미뤄왔던 생각 하나를 정리한 밤.
이런 것들이 ‘남는 시간’이 됩니다.
삶이 갑자기 대단해지지는 않습니다.
다만,
하루가 더 이상 흘러가 버리는 시간이 아니라
내 쪽으로 모이는 시간이 됩니다.
내 기준이 없으면,
삶은 언제나 남의 기준으로 방향을 틉니다.
기준은 거창한 결심이 아니라,
하루를 내 쪽으로 돌려세우는
가장 작은 장치입니다.